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살면서 한번 정도는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인생의 의미에 관한 질문에 정답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철학적 고찰과 분석을 통하여 어느 정도 수용가능한 답은 내릴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서 인생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인생의 의미를 알기 위하여 인간의 기원에 관한 자연주의(진화론)의 이론을 살펴보았는데, 인간의 기원이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삶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고 만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원을 창조주의 특정한 목적과 의미에서 찾는 것은 어떨까요?
이러한 관점의 대표적인 기독교 (또는 유대교)입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신은 지구를 관리하고 보호할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왜 지구를 보살펴야 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인생이 의미를 갖게 해 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제는 만약 우리가 신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은 자신의 목적이 아닌 외부의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을 섬기도록 창조되었다는 관점은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의 목적과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인생의 의미와 목적 역시 종교성에 기반해서는 답변하기 쉽지 않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예를 생각해 봅시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을 만든 과학자의 일기를 통해 자신의 창조 과정을 파악하였으나 그의 반응은 괴물로 만들어진 것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존재의 기원을 알게 되었으나 여전히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창조주에 의해 부여받은 목적과는 전혀 다른 목적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별다른 의미나 목적 없는 돌멩이가 위대한 예술작품이 되듯이, 최초의 목적은 영원한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며, 최초의 목적이 없었다고 해서 영원한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목적은 획득될 수도, 없어질 수도,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삶의 기원은 삶의 목적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다음 장에서는 삶의 의미를 우리의 기원이 아닌 미래의 목표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참고: Julian Baggini, What's it all about? Philosophy and the Meaning of Life, 2002, 2017(번역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