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살면서 한번 정도는 이런 질문을 해봅니다. 인생의 의미에 관한 이러한 질문에 정답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철학적 고찰과 분석을 통하여 어느 정도 수용가능한 답은 내릴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흥미로운 철학서를 토대로 인생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고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 질문이 너무 막연하며, 구체적이지도 분명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질문을 작은 질문들로 쪼개어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있게 된 원인을 설명'(과거 지향적, 기원에 관한 것)하며, 다른 대답은 '우리 존재의 목적을 설명'(미래 지향적, 목적지에 관한 것)합니다.
우선 첫번째 답변에 관하여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인간 생명의 기원을 알게 된다면 과연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될까요?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자연주의와 창조론이 있습니다. 자연주의는 진화론을 토대로 인간은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태어나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생명을 무목적적이고 하찮은 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원이 무의미하다고 해서 인생 또한 무의미하다는 결론은 성급합니다. 오히려 삶의 의미는 우리의 기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즉 인생은 미리 결정된 의미가 없으며,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창조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어쩌면 미리 결정된 목적은 삶을 더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리 결정된 목적 하에 우리는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노예의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실존주의자 샤르트르는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결정할 힘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창조자에게 본질을 부여받은 생명체보다 더 유의미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고 보았습니다.
당신이 만약 진화론을 수용한다고 하여도 당신의 삶이 한낱 유전자의 자기 복제 도구일 뿐이라는 비관론에 빠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진화론으로 파악한 인간 생명의 기원에서는 비록 목적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으나, 그 사실이 곧바로 인생은 아무런 목적과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철학자 데닛(D. Dernnett)은 이렇게 묻습니다.
왜 우리의 목적은 저 높은 곳에서 부여받는 것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적을 만들어 낼 수 없는가?
인간은 누군가에 의하여 의미를 부여받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무의미한 인생 속에서도 스스로 의미와 목적을 만들어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자유롭게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존재라는 가정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창조론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더 잘 알게 될까요?
다음 글에서는 인간의 기원을 창조자의 설계라고 보는 입장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Julian Baggini, What's it all about? Philosophy and the Meaning of Life, 2002, 2017(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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